#0
추석이라 할 일도 없고 해서 2일에 한 번씩 당구장에 갔는데, 며칠 전에 예전의 샷 감각이 느껴지는 거다. 물론 예전과는 자세도 많이 달라지긴 했지. 그렇게 자세와 샷 감각(큐 무게가 느껴진다는 느낌)이 한 번에 오지 않더니 이제는 오기 시작하는 거다. 물론 샷 감각이 없을 때도 경기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 그렇다. 경기에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 게임을 한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그렇지.
#1
최근에는 당구장 이따금씩 갔었는데, 내 나름 룰을 어떻게 세웠냐면, 경기에 지면 그걸로 끝. 근데 매번 첫 경기에 지는 거다. 게다가 내 수지가 20점인데 반도 못 치고 지고. 그런 경우에는 경기 끝나면 바로 내 큐대를 정리한다. 슬럼프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때는 연습이고 뭐고 안 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그런 과정을 거치다 이제서야 다시 수지가 올라갈라나 예전의 감각이 돌아오는 거다.
#2
어제는 5게임을 쳤다. 추석 당일인지라 당구장에 사람이 없어서 연습구 치면서 몸 풀고 있었지. 연습구 안 치고 경기에 임하면 확실히 몸이 안 풀어져서 그런지 영 안 맞긴 하더라. 여튼 그러다 스승이 와서 한 게임하자고 했다. 예전 샷 감각이 돌아온 거 같다고 하면서.
#3
스승은 30점이다. 사실 그 형 때문에 내가 당구가 많이 늘었다. 당구의 맛을 알게 된 거였지. 확실히 당구는 죽어라 연습을 해도 누가 코치해주지 않으면 실력 안 는다. 한계가 분명 있다. 스트로크도 그렇지만 같은 배치라고 하더라도 어떤 게 더 편하게 치는 것인지가 많이 다르다. 물론 두께를 두껍게 치는 게 편하게 치는 거겠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 얘기가 틀리지. 당구는 두께, 당점, 스트로크, 스피드의 조합이다 보니 두께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다. 두께와 당점이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두께와 당점에 스트로크가 달라지면 공 진행이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고, 같은 스트로크라고 해도 스피드에 따라 또 달라지니 말이다.
#4
여튼 스승과 경기를 했는데, 완승했다. 스승이 잘 친단다. 예전의 샷 감각이 돌아왔다고 했잖아. 큐 무게가 느껴져. 큐 무게로 편하게 치다 보니 공이 쭉쭉 뻗는 거지. 그리고 재게임. 이번에도 완승. 이번에는 스승보다 알수도 더 많이 쳤다. 스승한테 이기는 경우가 그리 많지가 않다. 한 번 이기면 다음 번은 지기 마련. 그만큼 수지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 나는 실수를 할 수 있어도 스승은 실수하기가 쉽지가 않거든. 게다가 공도 잘 안 서. 그런데 그걸 풀어냈던 거지.
#5
내가 다니는 당구장(최근에 옮겼다. 대화 당구장에서 인근에 있는 카리스 당구장으로.)에 스승의 친구가 있다. 이 친구 분도 30점. 처음 소개 받았을 때는 상대 승률이 50%였는데, 그 분이 당구장 옮기면서 다이 적응이 안 되어서 그랬던 것이고, 다이 적응이 끝난 후로는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최근 4연패했었나? 여튼 내가 치는 걸 보더니 경기 끝나자 마자 그러신다. "여기 셋팅요."
#6
스승의 친구 분과 칠 때는 항상 담배 내기를 한다. 원래 나는 내기 당구는 잘 안 치는데 담배 내기를 항상 외치신다. 왜냐면 치고 나서 가르쳐줄 거니까 그냥은 못 가르쳐준다는 얘기. 어제도 당연히 담배 내기였다. 샷 감각이 좋았기 때문에 오늘은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했지. 역시나. 30점은 다르긴 다르다. 기본구는 거의 놓치는 법이 없고, 기본구를 치면 또 다음 공 배치도 좋게 만든다. 그래도 샷 감각도 좋은데 포기할 순 없지. 이렇게 지나 싶었는데 결국 따라잡아서 28:20으로 이겼다.
#7
확실히 30점의 고수들이랑 치면 뒷공이 없다. 즉 내 공 배치가 어렵다. 그래서 운 좋게 기본구가 뜨면 무조건 치지 않으면 이기기 힘들다. 그렇다고 내 수지에 기본구 뜨면 무조건 먹나. 실수할 수도 있는 법이지. 그래도 샷이 되는 날이다 보니 집중해서 쳤을 뿐.
#8
그리고 어제는 스승한테서, 스승의 친구 분한테서 몇 가지 스트로크를 배웠다. 스트로크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떤 특정 배치에서 어떤 스트로크로 쳐야 편하다는 그런 거를 가르쳐준 것. 물론 아직 내 스트로크가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에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많은 도움이 된 듯.
#9
그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또 선수 붙여주신다. 24점. 한 번 쳐봤던 분인데 상당히 잘 치신다. 옮기기 전 당구장에는 수지가 24점이라고 해도 물 24점이 많은데, 옮긴 당구장에는 다 점수가 짜서 꽉 찬 수지의 선수들이 많다. 그리고 지난 번 쳐봤을 때 상당히 잘 치시더라고. 나름 초집중해서 쳤는데도 기본구 뜨면 3개는 거의 기본적으로 먹어가니 뭐 답이 없더라고. 내가 잘 치면 되지만 내가 실수를 하니까.
그래도 샷 감각이 좋은 날이니 오늘은 해볼 만하지 않겠냐 싶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갤러리들까지. 내가 다니는 당구장은 많은 분들이 중대에서 치는데 실력이 만만찮다. 중대에서 친다고 얕볼 수 있는 분들이 아냐. 나는 빈쿠션 각 재고 쳐도 들어갈까 말까인데, 각도 잘 안 재면서 치면 다 들어가. 정말 잘 치는 분들 많더라고. 그런 24점 중에서도 상당히 잘 치는 분인데, 오늘은 복수전이니 최선을 다했다.
초구를 뺐기니 초구에 3점을 친다. 지난 번에는 4점 쳤는데. 역시. 그러니 21대 20으로 게임을 하는 꼴 아닌가. 후구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동네 당구장에서 후구가 어디있나. 그래서 뱅킹이 중요하다. 뱅킹 잘 치면 2개 정도는 그냥 먹으니까. 그래도 샷 감각이 확실히 좋긴 했던지 1분당 1점씩 거의 10분에 10점을 낸 거다. 그러나 항상 어떤 게임이든 그렇지만 잘 맞을 때가 있으면 안 맞을 때도 있는 법. 공타 행진.
결국 나중에 역전 당하고 만다. 그러나 끝까지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운 좋게 쫑나서 들어가는 게 3개 정도나 되고 결국 22대 20으로 이겼다. 운이 좋았다. 정말. 내가 잘 쳐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다.
#10
그렇게 4연승을 하니 만약 그 분 이기고 나면 다음은 나라고 하시는 24점이 있었다. 그 분한테도 내가 4연패인가 했었지. 총 6번을 쳐봤는데, 처음 칠 때 내가 말도 안 되게 잘 쳐서(막말로 쑤시면 들어가서) 이긴 거 빼고는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아 그러고 보니 5연패네. 근데 사실 이전 두 경기에 진이 다 빠졌다. 나름 집중 엄청 했거든. 그래서 힘들다고 했는데 그럼 다음에 치자고 하시길래 그냥 치자고 했다.
역전에 역전을 하면서 나는 1개를 남겨두고 그 분은 2개를 남겨둔 사이에 결국 그 분이 실수를 해서 내게 기본구가 떴다. 사실 기본구라는 게 어딨어. 쉽긴 해도 잘못 치면 못 먹는 거지. 게다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상황도 그렇지만 난구를 잘 쳤는데도 불구하고 깻잎 한 장 두께로 새는 경우가 3번 정도 있어서 내가 좀 맛이 간 상황이었다. 오늘 운은 다했다는 생각까지 했었지만 그래도 최선은 다 했지. 기본구지만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가장 확률이 높게 쳤다. 혼잣말 하면서. 너무 얇으면 새기 쉬우니 적당히 얇게 스트로크는 너무 밀지 말고 던지듯이 툭. 그렇게 해서 결국 이겼다. 22대 20으로. 5연승.
#11
경기 끝나고 나서 또 몇 개 팁을 알려주시더라. 오~ 상당히 도움이 되는 팁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내가 많이 연습해야할 스트로크였고. 여튼 5연승. 얼마만에 당구장에서 게임비 안 내고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물론 게임에 이기고 안 치면 되는데 나는 보통 게임 질 때까지 계속 치거든. 그렇게 했음에도 다 이겼으니. 샷 감각도 샷 감각이지만 운도 많이 따라줬던 거다. 사실 고수가 디펜스하게 되면 얘기가 틀려지거든. 뒷공이 어려웠던 거도 디펜스를 하려고 해서 했다기 보다는 항상 그렇게 치다 보니까 그런 거지 맘 먹고 디펜스하면 뭐 내가 이기기 힘들지.
여튼 샷 감각 되찾아서 기분 좋고, 그 기분으로 5연승해서 기분 좋았다. 사실 스승이랑 첫 게임 치르고 나서는 스승한테 오늘 샷 감각 괜찮은데 원정 경기나 갈까요? 그랬었거든. 예전에는 다른 당구장 가서 경기하고 그랬었으니까. 다른 당구장 가면 아무래도 다들 모르는 사람들이고 하니 초집중해서 치게 되니까. 그렇게 원정 경기를 가자고 할 정도로 샷 감각이 좋았다. 물론 이게 또 언제 망가질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세도 정립이 됐고 했으니 스트로크 연습 좀 하고 그러면 또 수지 올려도 되는 순간이 그리 머지 않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