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부터 좀 그런 게 있었다. 지나가다가 길거리에서 좌판을 펼치고 판매하는 사람들을 가끔씩 유심히 살피곤 한다. 어느 날, 운동을 끝마치고 돌아가는 도중에 좌판을 펼칠 만한 자리가 아닌 데에 좌판(좌판이라고 할 것도 없다만)을 펼치고 조그만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주무시고 계신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뭘 파는 건가 싶어서 봤더니, 수세미다. 계속 뒤돌아보게 되더라. 왜냐면, 내 할머니가 생각나서.
마침 집에서 확인해보니 수세미가 필요했다. 담에 보게 되면 사야지 했었지. 그런데 사려고 하니까 며칠 안 보이시는 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이소에서 수세미를 샀다.
5개입 1,000원짜리. 참 다이소 물건은 가성비가 좋은 거 같다.
그래서 수세미가 필요 없었다. 여느 날과 같이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 이 날은 계시더라. 다이소에서 구매해서 이젠 더 구매할 필요가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근데 맘이 그렇더라. 그래서 지나칠 때 본 수세미 가격이 떠올랐다. 6개에 5,000원. 지갑을 확인했지. 1,000원권 3개에 50,000원권 4개. 10,000원권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없더라. 그래서 편의점에 갔다. 50,000원권 쓰려고.
뭘 살까 했다가 갑자기 콜라가 생각나던데, 사실 콜라는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한 박스 사둔 게 있어서 매일 1콜라를 마시는 지라 굳이 싶었다. 운동을 하고 왔으니 프로틴 음료나 마셔야겠다 해서 살펴보다가 1+1이길래, 초코맛이길래 이걸 샀지. 맛 괜찮은 듯.
그렇게 6개 5,000원 주고 사온 수세미다. 13개에는 10,000원이던데. 너무 많은 거 같아서 6개만 샀다. 색깔별로. 수세미를 사면서 대화를 해보니, 음 뭐랄까. 일반적이진 않으시더라. 소녀같은? 말투도 그렇고. 내 할머니는 그렇지 않았지만 이걸 보고 내 할머니가 떠올랐던 건, 할머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렇게 좌판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할머니에 대한 추억
원래는 수퍼를 하셨었는데,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수퍼라 토큰(버스 탈 때 내는 동전)을 파셨었지. 내 어릴 적 기억에 토큰을 사러 나를 데리고 다니셨던 기억도 난다. 그러다 어떻게 수퍼를 그만두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좌판을 놓고 토큰을 파셨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다니다 할머니 앞을 지나가기도 했었지. 내 친구들도 그게 내 할머니인 걸 다 알고 있었고. 그런 걸 부끄러워해본 적도 없고. 지나칠 땐 항상 인사하고 그랬으니까.
그 추운 겨울에도 목도리를 칭칭 감고서 바깥에서 그러시는 걸 보면서 아버지는 제발 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할머니는 힘이 닿는 한까지 그렇게 하셨다. 멀리서 보면, 더운 날이든, 추운 날이든 고개를 푹 수그리시고 주무시는 듯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기억 때문에 나는 대학 시절에도 학교 앞에서 설탕 과자 판매하시는 분에게 다량의 설탕 과자를 산 적도 있었지. 그 때가 아마 크리스마스 였는데 늦은 시각까지 좌판을 펼쳐두고 고개 푹 수그리고 주무시고 계시길래.
나는 그렇다. 이게 동정이든 뭐든 어떻게 보이든지 간에, 그렇게 열심히 사는 데에 응원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음식점에 있다 보면 물건 팔러 오시는 분들 물건 잘 사주는 편이고. 비록 내가 받는 껌 하나, 초콜릿 하나가 편의점에서 사면 더 싸지만, 가격을 떠나 그렇게 용기있게 그럴 수 있는 그들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 지는 못하지만,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왠만하면 사주는 편이다.(하루에 3명에게 사본 적도 있을 정도.)
이번엔 그냥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더라. 그렇게까지 할머니가 고생하시면서 그랬던 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게 됐는데, 할머니 딸 중에(내겐 고모) 정신박약인 고모가 한 분 계시는데, 할머니와 같이 살았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폐 끼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꼬박 꼬박 돈을 모아서 그걸로 할머니 다니시던 교회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에 평생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모으신 거였다.
남은 생애에 그거 하나만을 목표로 사신 듯 싶더라. 과연 그걸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고 희생만 하면서 살았던 그 삶이? 요즈음 세대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때는 그랬었다. 부모의 삶은 희생하면서 사는 게 당연한 듯이 여겨졌었고. 내 아버지, 어머니 때도 그런 게 남아 있지만 내 때가 되어서는 그런 게 많이 퇴색되었지. 이혼도 빈번하고, 개인의 행복이 중요해졌고.
비록 내가 산 수세미는 5,000원 밖에 안 되지만,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게 해준 것과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해준 것의 가치에 비하면 너무나 싼 가격이 아닌가 싶었다. 하루에 이 정도 팔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측은한 마음을 보여주기 보다는 이왕이면 색깔별로 사야겠다고 이쁘다고 하면서 6개를 골랐고, 많이 파시라고 하면서 구매했는데, 왜 남한테는 이랬는데, 내 할머니한테는 그러지 못했나는 반성도 되더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살아계신 아버지나 어머니한테나 더 잘 하자는 생각 들었다. 아무리 내가 잘 한다고 해도 돌아가시면 더 잘 해주지 못해서 후회할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덜 후회하게.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다시 내 부모님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내 자식이 되어 내가 받았던 사랑 다시 돌려줄 수 있었으면 한다. 잘 하자. 살아계실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