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36) 썸네일형 리스트형 21살. 과대 실력의 첫 시발점 "개강파티" 아마 홈페이지(지금은 블로그지만)에 자주 찾아오는 내 동기들은 알 것이다. 나의 과대 생활에 대해서 말이다. 화려했다면 화려했고, 남달랐다면 남달랐을 나의 과대 생활. 내가 과대를 하려고 했었던 것은 모르겠다. 응당 해야만 했다고 기억된다. Orientation 에서 방장 하면서 어느 정도 인정 받고, 당시에 자동화공학과 선배들의 격려 속에서 과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냥 들었었던 것 같다. 과대 선거. 아마도 내가 기억하기로 김강연이라는 동기랑 같이 막판 뒤집기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던 것 같다. 강연이도 재수를 해서 들어왔고 거기다가 경남 출신이다. 나 또한 재수를 해서 들어왔고 출신은 부산이었고. 말투가 거의 비슷한 둘이서 개강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 선출하는 과대. 그러나 둘.. 20살. 나에게는 북멘토가 있었다. 어느 순간에 연락이 두절되어 이제는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알 수가 없는 분이 있다. 아마도 내가 연락처를 제대로 보관하지 않았던 탓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인연의 끈을 쉽게 놓아버리게 된 내가 가끔씩 그 분이 생각나면 후회스럽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몇 명이 있는데, 언젠가 꼭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라도 내가 유명해진다면 꼭 찾고 싶은 사람들이라... 어쨌든 그 멘토는 다름 아닌 내 영어 과외 선생님이셨다. 나는 은사님이라고 표현한다. 재수하기 전이니 1994년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부산 대연동의 대연고인가 하는 데서 전교 1등(문과)하는 친구와 같이 둘이서 과외를 받았었는데, 사실 워낙 날라리 생활을 하다가 대학 가자 해서 공부하니 공부가 됐겠냐만은 내가 내 .. 17살. 태어나서 처음 접해본 귀신 난 중학교 이후로 가위에 많이 눌렸었다. 사실 중학교 이후부터는 내가 공부에 푹 빠져서 살았기 때문에 몸이 많이 피로했었던 것 같다. 아침 6시에 일어나고 밤 12시 30분까지 공부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12시 30분이라는 것은 내가 다닌 독서실의 마지막 시간이 그러했고 거기는 고등학생보다는 중학생들이 많았던 소위 중학생 전용 독서실이었다. 방과 후에 집에 와서 잠깐 자곤 했지만 그런다 해도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지금보다도 더 적게 잘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입시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라기 보다는 내 스스로가 공부에 취미를 갖고 또 선생님들이나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 또 누군가에게 지는 것이 싫어서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생활의 반복 때문인지 일주일에 3~4번 정도는 가위에 눌.. 5살. 내 인생의 첫 매스컴 나들이 * 이 글을 기존 홈페이지에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사진들(기존 홈페이지에는 글만 있었다.)을 스캔하는 것만 27장. 스캔한 것을 보관용과 웹용으로 바꾸는 것으로도 이 글에는 정성이 들어가 있다. ^^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부산 집에 있는 내 앨범(동생 앨범은 빨간색 내 앨범은 파란색이다.)을 보면 맨 앞에 돌 사진이 있고 그 옆에 보면 신문 한 면이 있다. 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MBC 배 세 발 자전거 대회에 대한 기사였었고 난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들었을 뿐 사실 그것에 대한 자세한 기억은 없다. 신문에는 난 단상(1등,2등,3등 올라가는 곳)에는 없고 그 다음 줄에 있다. 4세부부터 상을 줬는지 아니면 6세부부터 시상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어쨌든 단상에는 그 다음으로 올라갔었나 보다. 하여간.. 이전 1 2 3 4 5 다음